★★★★☆
미스테리 / 열차괴담
나는 이전에도 델라웨어에서 워싱턴 D.C.까지 기차를 수없이 타보았다. 윌밍턴에서 저녁 7시 53분에 출발해 9시 36분에 도착하는 열차였다. 표값도 저렴했고 그 시간대쯤 되면 기차 안은 대개 텅 비어 있었다. 완벽했다.
오늘 밤도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늘 그렇듯 창가 자리에 앉아 기차가 앞뒤로 부드럽게 흔들리는 동안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타고 지 20분쯤 지났을까, 머리 위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의 바랍니다. 탑승객 중 신원 미확인 승객이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 신원 미확인 승객이라고?’
나는 객실 안을 휙 둘러보았다. 몇 열 뒤편에 내가 탈 때 보았던 중년 여성 한 명뿐이었다. 그녀도리 영문을 모겠다는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머리 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평소와 달랐다. 평소의 알아듣기 힘든 짓궂은 남자 목소리가 아니었다. 단조롭고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였다.
설마 무슨 연쇄 살인마 같은 놈이라도 기어 들어왔다는 뜻인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좀 더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을까? 숨으라든가, 비상 정차를 한다든가 하고 말이다.
이건 마치… 누군가 차표를 내지 않았다고 안내하는 것만큼이나 태평하게 들렸다.
나는 객실 앞쪽에 있는 LED 전광판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다음 역 정차역을 알려주는 대신, 전광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 있었다.
신원 미확인 승객 신원 미확인 승객 신원 미확인 승객
글자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며 깜빡거리는 주황색 픽셀로 스크롤되어 지나갔다.
설마 러시아 스파이라도 탔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시스템 오류 같은 건가?
나는 주황색 글자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신원 미확인 승객…
나는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차에서 신원 미확인 승객이 탔다고 방송 나오는데?? 진짜 이상해. 이거 가짜겠지?? 아니면 나 내려야 할까?)
그는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진짜 이상하네. 일단 내려. 내가 다음 기차 타고 올라갈 수 있어 너 지금 어디야?)
나는 지도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애버딘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있었다. 잠시 망설인 끝에 나는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냥 단순한 오류 같은 거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순 없지.)
나는 통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바로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객실 맨 뒤에 있던 그 중년 여성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머리를 위쪽 수하물 선반에 쾅 찧었다.
“미안해요,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닌데 저기 지금 무슨 일인지 아셔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이거 무슨 장난 같은 거 아니에요? 신원 미확인 승객이라니 무슨 소리야?”
“저도 몰라요. 혹시 모르니 저는 내리려고요.” 나는 그녀를 피해 통로로 빠져나와 객실 사이의 연결 통로(베스티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그녀는 서둘러 자기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연결 통로로 발을 디뎠다.
내 발밑에서 쇠로 된 바닥이 덜컹거렸다. 기차 바깥 풍경은 저 멀리 깜빡이는 작은 불빛 하나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내 뒤쪽 문이 열리며 그 여자가 가슴에 가방을 방패처럼 바짝 껴안은 채 들어왔다.
“내일 아침 우리 딸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거든요.” 그녀는 잿빛 금발 머리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간신히 사이가 좋아졌는데… 만약 내가 1분이라도 늦기라도 하면…”
나는 다음 객실로 통하는 유리창을 힐끗 보았다. 앞쪽에 앉아 있는 남자 한 명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의자 위로 삐져나온 그의 뒤통수 꼭대기만 간신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짐을 챙기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는 걸까?)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이래서 사람들이 다치는 거야. 경보가 울리는데도 계획을 바꾸지 않아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낌새가 느껴지면 당장 튀어나와야 하는 법이다. 엄마가 아주 오래전에 내게 가르쳐 준 교훈이었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어둠을 뚫고 반짝이며 저 멀리 불빛들이 점점 커졌다.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문에 바짝 다가서서 작은 사각형 유리창밖을 응시했다. 불빛들이 더 커졌다.
콘크리트 승강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낮은 벽돌 건물과 어두컴컴한 창문들
은빛 표지판: 애버딘 역
우리는 그곳을 그대로 쌩 지나쳐 달렸다.
나는 창밖을 응시했다. “방금 역을 그냥 지나쳤는데요.”
참나… 아니… 정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더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머리 위 인터폰이 ‘달칵’ 소리를 내며 켜졌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탑승 중에는 원래 탑승하신 객실에 계속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단조롭고, 느릿한 목소리.
“이게 무슨 개소리야?” 여자가 귓속말로 읊조렸다.
나는 창문을 통해 다음 객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완전히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아, 잠깐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기차가 커브를 돌자, 그의 머리가 어깨 위로 덜렁거리며 끄덕였다. 힘없이. 마치 그가…
나는 우리 객실 문으로 황급히 달려가 버튼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문이 덜컹거리며 열렸고 우리는 안으로 급히 밀려 들어갔다.
“저 남자… 뭔가 엄청나게…” 나는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알아요. 설마 그 사람이…?” 그녀는 차마 입 밖에 내어 말하지 못했다.
“그게…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나는 연결 통로로 통하는 문을 힐끗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지만, 이제 문 위의 전광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떠 있었다.
객실에 머무르세요 객실에 머무르세요 객실에 머무르세요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911을 눌렀다. 나와 그 여자는 동시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차 안에 갇혔는데”
“누가 죽었어요”
“기차가 멈추지 않아요”
“애버딘 역을 지나쳤어요”
상담원은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심 알고 있었다—도대체 그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기차를 운전하는 작자가 멈추려 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경찰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겠는가? 바리케이드라도 쳐서? 어쩌면 충돌 사고로 우리를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금빛 불빛들이 스쳐 지나가고, 주택가 단지들이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져 갔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당신…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면 살 수 없겠죠?”
“그럴 것 같아요, 이 속도라면.” 그녀가 대답했다.
적막이 우리를 짓눌렀다.
“우리 화장실에 숨어야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잠금장치가 있어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예요”
“전광판에 객실에 머무르라고 했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 문구를 띄운 게 누군 줄 알고 그 인간 말을 믿어요?”
“어차피 화장실 문은 엉성 하잖아요.” 내가 말했다. “누가 우리를 잡으려 들면 문쯤은 우습게 따고 들어올 거예요.”
나는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리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에 겁을 먹고 있는 것뿐일까?
어쩌면 그 남자 그냥 잠들어 있었던 것뿐일지도 몰라. 어쩌면 다른 이유로 역을 그냥 통과했을지도 몰라. 어쩌면 정말 사소한 시스템 오류일 뿐일지도..
머리 위 전등이 깜빡였다.
그리고는 완전히 꺼져버렸다.
“씨발 뭐야?!” 나는 훌쩍이며 소리쳤다.
객실 안은 오직 객실 맨 앞쪽에 있는 전광판의 주황빛 불빛으로만 밝혀져 있었다. 전광판은 여전히 똑같은 메시지를 깜빡이고 있었다.
자리에 머무르세요 자리에 머무르세요 자리에 머무르세요
“제정신이 아니야.” 여자가 귓속말을 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방금 불이 꺼졌어 911에 전화도 했는데 기차에서 어떻게 빼내 줄지 모르겠어)
나는 전송 버튼을 누르고 눈을 잠깐 감았다.
“잠깐만요. 불이 꺼진 거 어쩌면 우리한테 유리할지도 몰라요.”
여자가 말했다.
“더 잘 숨을 수 있잖아요. 그 자가 이 넓은 기차 안에서 우리를 찾아낼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녀가 웅크려 앉았다.
“의자 밑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뒤쪽에 벤치 좌석이 있어요. 거기는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객실 안을 헤치며 양옆의 천으로 된 등받이를 손으로 더듬었다. 우리는 마지막 통로에 도착했다 거기는 가운데 공간을 두고 마주 보는 벤치 형태로 좌석 배치가 바뀌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좌석 사이의 공간으로 몸을 구겨 넣은 뒤, 첫 번째 벤치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여자도 똑같이 두 번째 벤치 밑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너무 더웠다. 바닥의 카펫이 팔을 긁었다. 의자의 쇠 프레임이 내 머리를 짓눌렀다.
나는 다리를 비틀며 뒤로 밀려나 내 머통이 통로 쪽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잘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 혹은 그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낸다면… 도망칠 길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갇힌 쥐였다.
우리는 의자 밑에 엎드린 채,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기차가 우리 밑에서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두 다리가 쑤셔왔다.
해리(Harry)가 아마 답장을 보내고 있을 거란 걸 알았지만, 내 휴대전화는 무음으로 해둔 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들어있었다. 몸을 비틀어 꺼낼 수가 없었다.
설령 꺼낼 수 있다 해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만약 휴대전화 불빛 때문에 폰을 보던 중에 그 자가 지나가다 우리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덜컹거리는 문 열리는 소리에 나는 현실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객실 저 멀리 끝에서 부드럽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느리고 체계적인 발소리. 고요하게. 마치 먹잇감을 스토킹하는 사냥꾼 같았다.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나는 숨을 참았다.
툭.
검은색 남성용 가죽 구두 한 짝이 시야에 들어왔다.
‘안 돼.’
주황빛 불빛 안에서 구두가 번들거렸다. 마치 젖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폐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제발 날 보지 마. 제발. 제발.’
‘지나쳐 가. 계속 걸어가.’
‘가. 가. 가.’
그것이 멈칫했다.
내 얼굴 코앞에 있는 카펫 위에 구두가 멈춰 섰다.
그러더니 마침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또 한 걸음.
우리 뒤쪽 문이 덜컹거리며 열렸다.
그리고 닫혔다.
나는 짧고 소리 없는 숨을 짧게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최대한 천천히 다시 숨을 들이켰다. 우리를 지나쳐 갔어. 살았다. 괜찮아.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얼굴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우릴 못 봤어요.” 내가 귓속말로 말했다.
그녀의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괜찮아요,” 내가 다시 귓속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내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문가에 무언가가 있었다.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짓누른 채. 유리에 하얀 입김이 서려 있었다.
아니. 방금 우리를 스쳐 지나간 그 사람은… 그게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승객이었을 뿐이다.
최대한 조용히 숨으려고 애쓰던, 우리처럼 숨어 있던 사람. 어쩌면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였을지도 몰라…
유리창에 붙어 있는 저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눈동자는 새까맣고, 피부는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광판의 깜빡이는 주황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그 얼굴 전광판에는 이제 다음과 같은 글이 떠 있었다.
달리지 마세요 달리지 마세요 달리지 마세요…
저것이 바로 신원 미확인 승객이었다.
여자가 의자 밑에서 기어 나왔다.
“안 돼요!” 내가 귓속말로 말렸지만, 그녀는 이미 문 열림 버튼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문이 스르륵 덜컹이며 열렸고, 그녀가 그 틈새로 빠져나가기 시작할 때..
반대쪽 문이 열렸다.
급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박자도 맞지 않고, 미쳐 날뛰는 듯한, 달리는 발소리.
맨발의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맨맨한 맨손이 카펫을 쾅쾅 내리치며 다가왔다.
몇 초 만에 그것은 내 앞을 지나쳐 다음 객실로 내달렸다. 문이 채 닫힐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낮게 억눌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정적.
안 돼.
안돼 안돼 안돼.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을 참으려 애썼다.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도망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모든 걸 억누르려 애썼다. 가만히 숨어 있어. 그것이 지나갔어. 네가 할 일은 그저 버텨내는 것뿐이야..
스으윽-철퍼덕.
문이 열렸다.
카펫 위에 짚인 하얗고 맨손인 손에는 무언가 시커멓고 찐득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맨발이 보였다. 오 하나님, 저 여자 네 발로 기고 있어. 그것은 거미처럼 삐그덕거리며 앞으로 기어오더니, 마침내 내 자리에 멈춰 섰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안돼안돼.
하얀 치마단 밑으로 파르르 떨리는 창백한 발목을 보며 나는 숨을 죽였다. 그것이 웅크려 앉기 시작할 때.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고, 바닥을 쓸며 늘어졌다.
더 많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그것이 고개를 푹 숙여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기 직전, 그것이 멈춰 섰다. 나는 그것의 헤어라인을 볼 수 있었다. 이마를 볼 수 있었다. 머리카락을 거꾸로 늘어뜨린 채, 내 얼굴 코앞에서.
그것은 그 상태로 멈춰 서서, 굳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그것의 온몸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거칠고 높은 쇳소리의 숨소리가 들렸다. 핏방울 하나가 창백한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 폐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숨을 쉬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머리카락과 손에 묻은 피, 그리고 발목을 스치는 더러운 흰색 드레스 자락만을 멍하니 응시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몸을 일으켰다.
문이 스르륵 열리고, 그것은 사라졌다.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폐가 타들어 갔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리와 발에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는 떠날 수 없어.
달리지 마세요 달리지 마세요 달리지 마세요.
전광판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내 몸의 모든 신경이 불에 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나는 이 어둠 속에 영원히 머물러야 했다.
의자 밑에 웅크려 있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숨을 죽이며. 두 다리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찌릿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머리가 멍해지고 팔은 감각을 잃었다.
하지만 그때, 기차가 속도를 줄였다.
불이 다시 켜졌다.
그리고 인터폰이 지지직거리며 켜졌다. 평소와 같은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유니온 역에 곧 도착합니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멈춰 설 때까지 나는 의자 밑에서 기어 나오지 않았다
. 온몸이 뻣뻣하게 굳고 고통으로 불타오르는 채로, 나는 의자 밑에서 기어 나왔다. 기차에서 절뚝거리며 내려 승강장으로 발을 디뎠다. 제대로 걷조차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밝은 불빛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발소리가 찰칵거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수근거리고, 여행 가방들이 콘크리트 바닥 위를 굴러갔다. 어딘가 머리 위 스피커에서 떠나는 열차를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탔던 그 객실에서는 그 누구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오직 나뿐이었다.
그리고 역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나는 내 머리카락을 알아채지 못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내 손목에 칭칭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이 닿았던 자리마다, 내 손목의 피부가 붉게 부르트고 물집이 잡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