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괴담] 아내가 모든 걸 간직하는 이유, 차라리 몰랐어야 했다

❚ CASE FILE #004

공포도
★★★★☆
유형
심리/범죄
출처
👾Reddit

 

혹시 ‘정크 저널링(Junk journaling)’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사진을 제외한 모든 것으로 만드는 스크랩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일회용이고 쓸모없는 물건일수록 더 좋습니다. 예를 든다면,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썼던 컵 홀더, 기억에 남는 여행에서 구겨진 탑승권, 심지어 지하철에서 어떤 아이가 권했던 껌 한 갑의 껍질까지 말이죠.

 

정크 저널링의 핵심은 그 쓰레기들을 다시 돌아볼 가치가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사람과 산책하다가 주운 깃털 하나를 종이에 테이프로 붙여놓으면꽤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깃대의 줄기 부분만 풀로 붙이고 수채화 물감으로 그 주변에 새의 나머지 모습을 그려 넣으면, 그 깃털은 순식간에 단독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추억을 담아내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릴 법한 물건들도, 누군가 관심을 두고 알맞은 자리를 찾아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내 아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이런 취미에 끌렸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애나는 언제나 사랑 받지 못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유형인지 아실 겁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거미나 쥐를 더 좋아하는 여자애 말이죠. 강아지와 고양이에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 설명했듯 “그런 건 이미 모두가 사랑해주잖아”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볼티모어시에서 노숙자 지원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으며, 솔직히 말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개인 시간을 쪼개어 쉼터나 무료 급식소, 혹은 어떻게든 전화번호를 알아낸 자선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냅니다.

 

그리고 물론, 그녀는 나와 결혼했습니다. ‘사랑받지 못함’은 내 기본 옵션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나는 눈도 뜨기 전에 버려졌고, 이후 18년 동안 위탁 가정, 그룹 홈, 소년원 시설을 전전하며 자랐습니다. 보호 종료로 퇴소할 무렵, 내가 가진 소지품의 전부라고 해봐야 쓰레기 봉투 두 개에 다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 시절을 지나오며 내 곁에 남아있는 유일한 존재는 위탁 가정 동생이었던 로더릭뿐이었습니다. 로드는 자신만의 ‘애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20대 내내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들, 즉 음주, 체포, 마약, 실직, 거주지 없이 전전하는 삶 쪽으로 그는 오히려 달려갔습니다.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그를 도우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 전화기에 그의 이름이 찍힐 때마다 그냥 진동이 울리도록 방치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애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로드 역시 뭔가가 필요할 때면 그저 그녀에게 전화하기만 하면 된다는 걸 결국 눈치챘고, 그러면 그녀는 그를 집으로 초대하거나 나에게 그를 데리고 점심이라도 사주라고 압박하곤 했습니다. 나는 점심을 사주는 쪽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적어도 집안에서 은식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몇 달 전, 애나는 그 어떤 것도 쓸모없다고 여기지 못하는 자신의 성향에 명칭이 존재하며, 활성화된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나에게 정크 저널링에 관한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우리 집 서랍장은 영수증, 포장지, 찢어진 상자 조각, 리본 끈, 말린 꽃, 그리고 예전 같았으면 두번 생각지도 않고 버렸을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든 첫 저널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게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물건들로 일상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창의적인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완전히 절망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노숙자 쉼터의 단골이었던 윌리엄이라는 이름의 마음씨 착하지만 조현병을 앓던 80대 노인이 그날 아침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것입니다. 그의 시신이나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처리해 줄 연락 닿는 가족은 없었습니다. 시 당국의 눈에는 시신이나 소지품이나 똑같이 가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과거 볼티모어시는 연고가 없는 사망자를 공동묘지에 매장하곤 했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들을 계속 묻기에는 땅의 가치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요즈음에는 대신 화장을 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윌리엄과 교류해 온 애나가 그의 유족이나 다름없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시 당국이 윌리엄에 대한 절차를 마치자, 애나는 남겨진 것들을 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서류 작업과 대기 기간, 그리고 불편할 정도로 냉담한 행정 절차들이 이어졌지만, 결국 애나는 두 개의 용기에 윌리엄을 담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의 소지품은 캔버스 토트백 하나를 채웠습니다. 윌리엄 본인은 꾸밈없는 작고 장식 없는 골판지 상자에 담겨 왔습니다.

 

그녀가 식탁 위에 그 두 가지를 나란히 올려놓고 오랫동안 가만히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이게 전부야?” 그녀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그녀가 덧붙여 말하기를 기다렸습니다.

 

“82년의 삶인데…..” 그녀가 접시만큼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습니다. “이게 전부라는 거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는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다정하게 쥐어주려 애쓸 뿐이었습니다. “전부가 아니야.” 내가 마침내 말을 건넸습니다.

 

“당신이 그를 기억하잖아.”

 

커다란 갈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습니다. “언제까지, 어거스트?”

 

그것이 그녀가 특정 인물을 위해 저널을 만든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그녀는 윌리엄의 승차권으로 시작해 빈 담배갑을 붙였고, 마침내 그 토트백에 들어 있던 단 하나의 물건도 빠짐없이 조합해 냈습니다. 거기에 토트백 자체의 천 조각을 받침대로 쓰거나 비둘기와 십자가 모양으로 잘라내어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으스스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완성된 저널을 보여주었을 때, 나는 볼 권한이 없는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명확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격도 없이 타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기분 말입니다.

 

나는 윌리엄을 몇 번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엔 그가 자기 이름의 ‘i’ 자 위에 별을 그려 넣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 한때 결혼했었다는 것, 썰렁한 똑똑 농담을 좋아했다는 것, 그리고 삶의 어느 지점에서인가 여백에 몇 단어를 적을 수 있을 만큼의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애나를 꼭 안아주고 정수리에 키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습니다. 별로 다정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삶의 파편들을 가져와 이렇게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냈다고 말입니다.

 

며칠 뒤, 나는 그녀가 새로운 저널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널에 넣을 내용물의 파편들이 오직 그녀만이 해독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녀 주변에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매들린 거야.” 엉킨 양면테이프를 푸느라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녀가 말했습니다.

 

“매들린…” 나는 분명 기억해 내야만 하는 그 이름을, 마치 되뇌면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읊조렸습니다.

 

“맙소사, 어거스트, 왜 그래, 매들린 있잖아!” 그녀가 쏘아붙였습니다. “새 좋아하던 그 여자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요. ‘새를 좋아했다’는 표현은 지독한 축약이었습니다. 특히 토요일 쉼터 근무가 길어져 애나를 차로 데리러 갔을 때 그 여자를 처음 만났는데, 그녀는 내 차 보닛 위로 기어 올라가더니 휘파람을 불며 맨살의 팔을 날개처럼 펄럭이기 시작했습니다. 쳐진 살집을 포함해 그 팔의 모든 인치마다 새 문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떤 것은 전문가가 한 것처럼 보였고 오래되어 색이 바랬지만, 나머지는 스스로 했거나 유치원생에게 도안을 그리게 하고 새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애나가 밖으로 나와 살그머니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때까지 지저귀고 까악까악 소리를 냈습니다. 애나의 얼굴에는 내가 억누르기 힘들었던 그 어떤 비난의 기색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애나였습니다.

 

“아, 당연히 매들린이지. 이제 기억나. 여보, 정말 미안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얘기하고 싶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숨을 깊게 내쉬었습니다. “그 여자분 돌아가셨어.”

 

” 그렇구나. 알겠어. 그럼 작업하게 혼자 두도록 할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나는 다시 피어오르는 타인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듯한 불편한 기분 때문에, 애나와 그녀의 새 저널로부터 예의 바르지만 신속하게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녀는 전에도 노숙자 친구들을 잃은 적이 있었고, 사실 아주 많았지만, 이 새로운 창작 활동이 그녀로 하여금 더 깊고 밀접하게 슬픔을 달래도록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윌리엄의 저널이 가진 사적인 성격을 몰래 들여다본 후라, 나는 도덕적인 지지 이상으로 더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계단 맨 아래 난간을 돌 때쯤 애나가 나를 불러세웠습니다. “참, 당신 동생한테 전화 왔었어.”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돌아갔습니다. “그냥 ‘로드’라고 해, 굳이 내 ‘동생’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그 말에 그녀의 주의가 끌렸습니다. 그녀는 테이프를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을 주며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나한테 시비 걸지 마, 오늘은 안 돼. 로더릭은 당신 동생이야. 만나고 싶어 하니까, 당장 다시 전화해서 약속 잡아. 그리고 꼭 또 나갈 거라면, 어디를 가든 나한테 줄 뭔가를 가져와.”

 

그녀가 말한 게 스콘이나 차 한 잔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정크 중독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가져다줄게.”

 

애나가 ‘정크 저널링(Junk journaling)을 시작한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그녀는 우리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TV에서 계정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내 추천 영상의 절반이 [누름꽃이 갈색으로 변하지 않게 하는 법], [자수 실의 끝이 풀리지 않게 하는 법], [얇은 가죽이 마르면서 말려 올라가지 않게 하는 법], [섬세한 종이를 변색 없이 코팅하는 법] 따위를 설명하는 영상들로 도배되었습니다. 내가 딱 한 번 불평하자, 애나는 예술가와 결혼한 대가라고 나에게 일러주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옳았으니까요…..

 

나의 요청으로 그녀는 작업 공간을 남는 방으로 옮겼고, 임시 작업실에 맞게 가구를 재배치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아이를 위탁 양육하는 것에 대해 항상 이야기해 왔기에, 언젠가 그 방은 애나의 글루건보다 그 방을 더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소유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녀의 방이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두어 달이 흘렀습니다. 일을 하거나 봉사를 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녀가 작업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었기에, 나는 애나를 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내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이라면 걱정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그저 ‘애나’다운 행동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어떤 것에도 자신의 전부를 쏟지 않는 적이 없었고, 이것은 그녀가 너무 쉽게 버려졌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물건들을 기리는 새로운 방식이었습니다.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돌봐야 할 또 다른 무언가였던 셈입니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나는 이런 신선함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더 잘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어제, 나는 애나를 데리러 쉼터에 들렀습니다. 그녀는 아직 나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흔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뒤쪽에서 누군가와 일을 마무리하는 동안 안내 데스크 근처에 서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봉사자 중 한 명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타인에게 해줄 법한 상투적인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매들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매들린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안됐어요.”

 

그 여성이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매들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돌아가셨잖아요.”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매들린은 죽지 않았는데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뇨, 죽었어요.”

 

“아니에요. 그냥 안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흔히 있는 일이죠.”

 

“애나가 그러는데 세상을 떠났다더군요.”

 

“자취를 감춘 건 맞아요. 몇 주 동안 아무도 못 봤으니까요.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지레짐작할 이유는 없죠.”

 

그 이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타운하우스로 돌아오는 짧은 운전 길에, 나는 애나에게 조심스럽게 그 주제를 꺼내보았습니다.

 

“그나저나, 매들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얘기 안 해줬잖아.”

 

그녀는 조수석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뜻이야?”

 

“당신 기다리는 동안 봉사자 한 명이랑 얘기했거든. 그 사람은 매들린이 죽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더라고.”

 

애나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두가 나만큼 그 여자를 잘 알았던 건 아니니까.”

 

“그런가 봐. 그 사람은 매들린이 그냥 안 나오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더라고.”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그때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어거스트, 당신은 그 여자에 대해 잘 모르잖아.”

 

“알아. 그냥 당신이 이제 이야기할 준비가 됐나 해서.”

 

“아직 안 됐어.”

 

“알겠어.”

 

몇 초가 지난 후, 그녀는 손을 넘어와 내 무릎 위에 살포시 얹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그 여자를 기억해 줘서 기뻐.”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경 쓰였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집에 나 혼자 있었습니다. 나는 10시쯤까지 참다가 남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끔찍한 것을 찾으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애나가 매들린의 물건들을 어디서 얻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방은 항상 그렇듯 똑같아 보였습니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단추, 리본, 말린 꽃, 비즈가 담긴 유리병들, 청소기가 닿지 않는 카펫 구석에 붙어 있는 자잘한 종이 조각들. 희미하게 글루건 냄새가 났습니다.

 

윌리엄의 저널은 책장 맨 아래 칸에 있었습니다. 매들린의 저널은 그 옆에 있었고, 그녀의 저널 뒤로도 몇 권이 더 있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매들린의 저널을 무릎 위에 올렸습니다. 한동안은 차마 펴보지 못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애나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습니다. 오늘 아침, 그 걱정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속을 거북하게 만드는 다른 의구심으로 hardened(강해)졌습니다.

 

매들린은 사라졌고, 애나는 그녀의 물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알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커버를 열었습니다.

 

첫 번째 페이지에는 봉투 모서리로 만든 작은 주머니 속에 접혀 들어간 식료품 영수증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번진 파란색 인크로 적힌 손글씨 목록이 있었습니다.

 

‘우유, 비누, 땅콩버터, 새모이’

 

다음 페이지에는 버스 환승권이 나무 줄기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패스트푸드 포장지 찢어진 조각은 나뭇잎이 되어 있었습니다. 애나는 파란색 호일 사탕 껍질을 아주 작은 새 모양으로 잘라 나뭇가지 사이에 앉혀놓았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하던 일이었습니다. 쓰레기를 가져다가 무언가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 말입니다.

 

몇 페이지 뒤에서 나는 입원 환자용 팔찌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필체로 “매들린에게”라는 글씨가 여전히 보이는 생일 카드의 모서리 조각도 있었습니다. 너무 색이 바래서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매들린이 수년간 보관해 온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신발끈, 도서 대출증, 셔츠에서 나왔을 법한 꽃무늬 천 조각. 매들린이 그녀에게 주었을 수도 있는 것들, 매들린이 버렸을 수도 있는 것들, 애나가 주웠을 수도 있는 것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페이지를 넘겼고, 까마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얼룩덜룩한 창백한 배경 위로 날개를 넓게 펼친 채, 오른쪽 페이지 전체를 거의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깃털, 굽어진 발, 한쪽으로 날카롭게 꺾인 머리.

 

특별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애나가 만든 모든 것이 훌륭했기에 그 점이 내 눈에 띄었습니다.

 

비율이 약간 이상했습니다. 한쪽 날개가 다른 쪽보다 더 높게 위치해 있었습니다. 꼬리 근처에는 깃털 여러 개가 뭉쳐 있었습니다. 검은 잉크는 곳곳이 회색으로 바래 있었지만, 다른 선들은 짙고 무겁게 남아 있었습니다. 비전문가의 솜씨처럼 보였습니다.

 

익숙했습니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애나가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까마귀의 배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유난히 얇은 가죽 조각을 찾아내 도안을 따라 잘라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창백한 복숭아색이었고, 대략적인 타원형이었으며, 투명한 코팅제 아래에 팽팽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테두리는 마치 옛날 우표처럼 장식적인 물결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건드려보았습니다. 손가락 끝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주 미세했습니다. 나는 손을 들이밀어 거두었습니다.

 

모공이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모공들이 수백 개나 있었습니다. 종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방식으로 표면을 어지럽히는 작고 어두운 구멍들. 까마귀 꼬리 근처에는 코팅제 아래에 거의 보이지 않는 털 몇 가닥이 갇혀 있었습니다.

 

속이 뒤틀렸고, 내 머릿속은 단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가죽이다.’

 

가죽이야. 가죽이어야만 해. 가죽에도 모공이 있을 수 있잖아, 그렇지? 모낭도 있을 수 있고? 그리고 애나는 가죽에 관한 영상을 보고 있었잖아. 나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주근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고 갈색인 주근깨. 까마귀의 왼쪽 날개 바로 아래에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주근깨가 아니라, 까마귀 그 자체를 말입니다. 내 차 보닛 위에 있던 매들린,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민소매 팔을 펄럭이던 모습, 손목부터 어깨까지 가득했던 새들, 어떤 것은 아름답게 새겨졌지만, 어떤 것은 너무 못 그려서 아이에게 문신을 맡겼나 싶었던 것들.

 

그리고 한쪽 위 팔의 부드러운 안쪽에 새겨진, 한쪽 날개가 다른 쪽보다 높게 솟은 삐뚤빼뚤한 검은 까마귀.

 

나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한 순간 저널은 내 손에 들려 있었고, 그다음 순간 저널은 내 무릎 사이 카펫 위에 펼쳐진 채 놓여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위를 향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응시했습니다. 매들린의 팔 한 조각이 나를 마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기어서 도망쳤습니다. 그 모습을 품위 있게 묘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일어서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나는 어깨가 침대 프레임에 부딪힐 때까지 짐승처럼 손과 발뒤꿈치로 뒤로 물러났습니다.

 

저널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까마귀의 날개는 펼쳐진 채였습니다. 그리고 내 뇌가 나를 지독히도 미워하는 게 분명했기에, 나는 애나의 검색 기록을 새로운 시각으로 떠올렸습니다.

 

‘얇은 가죽이 마르면서 말려 올라가지 않게 하는 법.’

 

나는 메스꺼운 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유독한 쓸개즙을 쏟아낼 준비를 하며 쓰레기통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토할 수 없었습니다. 귀에서 심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피가 쏠려 머리가 뜨거워졌지만, 구토감은 속 안에 그대로 갇혀 있었습니다.

 

나는 침대 프레임의 차가운 모서리에 이마를 대고 꿇어앉은 채,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봐야만 했습니다.

 

저널은 내가 떨어뜨린 곳에 여전히 펼쳐져 있었고, 까마귀의 날개는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떠났어야 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신 나는 다시 그것을 향해 기어갔습니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은 내가 틀렸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저널의 모서리를 잡고 올려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애나는 또 다른 새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번 것은 내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였는데, 몸통은 검은 종이로 잘라내고 날개는 수십 가닥의 미세한 검은색과 회색 실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몸통 근처에서 실을 엮은 뒤, 끝부분을 풀어 헤쳐 각각의 깃털처럼 보이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자수 실의 끝이 풀리지 않게 하는 법.’

 

손을 가져다 대어보았습니다. 그것은 내 손가락 끝을 감싸며 구부러졌습니다. 실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카락이었습니다.

 

나는 손을 얼마나 세게 뒤로 뺐는지, 바로 옆에 있던 종이 깃털 하나를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찰나의 순간, 그 멍청하고 작은 찢어짐이 나를 가장 공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훼손했다… 내가 그녀를 훼손했다. 나는 애나가 이걸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진심으로 염려하며, 찢어진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미래에 태어날 내 아이의 방 바닥에 앉아, 아내가 실종된 여자로 만든 정크 저널을 망가뜨렸다고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또 다른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또 한 페이지를. 나는 모든 것을 식별하려는 시도를 멈추었습니다. 그 편이 금세 중요해졌습니다. 어떤 것은 알아볼 수 있었고, 어떤 것은 추측할 수 있었으며, 어떤 것은 이름 없는 형태와 질감으로 남겨두는 편이 나았습니다.

 

하나 만큼은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애나는 갈색 종이 조각과 말린 풀로 작은 새둥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안에는 알처럼 세 개의 하얀 형태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 개는 비즈였습니다. 세 번째 것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혀가 내 입안에서 그에 해당하는 위치를 찾을 때까지 몇 초 동안 그것을 응시했습니다. 이빨이었습니다. 사람의 이빨. 뿌리 근처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치관에는 작은 은색 아말감 재료가 여전히 박혀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만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계속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다른 것들도 있었습니다.

 

말린 꽃 주변의 프레임 속에 박혀 있는 희고 딱딱한 어떤 것의 조각들.

 

처음에는 반투명한 플라스틱인 줄 알았던 얇고 굽어진 조각.

 

습리지 한 겹 아래에 있던 무언가, 완전히 알아채기 전에 페이지를 넘겨버릴 만큼은 충분히 그 모양을 알 수 있었던 무언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통틀어, 매들린의 평범한 삶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애나가 그 모든 조각의 자리를 찾아주었다는 점만 빼면 말입니다. 그것이 마침내 내 안의 무언가를 부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매들린을 페이지 사이에 숨긴 것이 아니라, 그녀라는 존재의 정수를 배치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내 차 보닛 위에 있던 그 시끄러운 여자는 산만하고 이상하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 그녀는 완벽하게 이해되었습니다. 평범한 삶의 온갖 지저분하고 작은 파편들이 자르고 접혀 다음 조각에 맞춰지며, 그 어떤 것도 낭비되지 않고 어긋나지 않게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매들린이라는 사람 자체조차 완벽하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나는 차마 페이지를 다시 앞으로 넘길 용기는 내지 못한 채, 까마귀를 생각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던 하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연고가 없다는 것은 화장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애나가 골판지 상자에 윌리엄의 82년을 담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보았기에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매들린이 연고자 없이 사망했다면, 잘라낼 까마귀 문신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녀를 거두었다면, 애나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왁스 종이 아래의 눌러놓은 꽃들, 코팅제 병들, 가위, 핀셋, 커팅 매트. 모든 것이 언제나 있던 그 자리에 정확히 있었습니다. 그 방 안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물건들의 ‘이름’뿐이었습니다.

 

‘실 -> 머리카락.’

‘가죽 -> 피부.’

‘쓰레기 -> 매들린.’

 

나는 내부의 내용물들이 새로운 압력에 끼익 소리를 내자 흠칫하면서도, 책을 조심스럽게 덮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깊은호흡을 강요하며, 나는 이 저널을 꺼냈던 깔끔하게 쌓인 저널 더미로 돌아섰습니다. 스스로에게 강제로 다른 저널들의 등표지를 읽게 만들었습니다. 내 눈은 단 하나의 이름을 제외한 모든 이름을 지나쳤습니다.

 

맨 끝에 끼워져 있던 것은 제본된 저널이 아니라, 내용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포트폴리오였습니다. 접힌 가장자리를 따라 유성 마커로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안의 내용물들 때문에 두꺼운 종이가 벌어지고 일그러져 글씨가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로더릭.’

 

꿈속을 거니는 것처럼, 나는 손을 뻗어 그 폴더를 꺼내 내 앞의 카펫 위에 놓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시야가 흐릿해졌고, 어지럼증을 누르려는 헛된 시도로 매끄러운 앞쪽 덮개를 단단히 눌렀습니다.

 

안에 있는 어떤 것도 붙여져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의도된 페이지마다 작은 더미로 바인더 클립에 찝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있던 위탁 가정을 주제로 한 페이지가 있었습니다. 내가 여섯 일곱 살 무렵 우리 둘을 그렸던 그림, 내 서랍에서 사라진 줄도 몰랐던 그 그림과, 나아와 로드의 1대 시절 스티커 사진, 그리고 그 둘을 보관해 두었던 신발 상자 조각이 바탕재로 쓰이기 위해 깔끔한 직사각형으로 잘려 있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내가 내 집을 구한 후 로드가 처음 찾아왔을 때의 영화 표, 몇 년 후 그가 나에게 쓴 메모, 내가 그와 술을 끊기 전에 자주 만나던 바의 컵 받침.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였습니다.

 

애나는 내가 겨우 지켜온 내 삶의 작은 수집품들을 뒤져, 로드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흔적을 꺼내간 것이었습니다.

 

몇 주 전 애나가 그를 만나라고 떠밀어서 그를 만나고 집으로 가져왔던 스티로폼 커피 컵.

 

“어디를 가든 나한테 줄 뭔가를 가져와.” 물론, 나는 가져왔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관하지 않았던 것들에 다다랐습니다. 납작해진 스티로폼 아래에는 사흘 전 ATM 영수증이 있었습니다. 나는 타임스탬프를 지켜보았습니다. 로드가 돈을 달라고 전화했었습니다. 나는 거절했고, 기분이 나빠졌지만, 어쨌든 현금을 뽑아 주차장에서 그에게 40달러를 건넸습니다.

 

나는 집에 오기 전에 영수증을 버렸습니다.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나가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펴져서 매끄럽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출금액: $40.00”

 

나는 계속 넘겼습니다. 맥주병 라벨, 플라스틱 커피 저개, 그가 달고 살다시피 한 냉동 브리또 브랜드의 종이 슬리브. 로드의 필체로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조각. 그가 겨울 내내 입었던 코트에서 떨어진, 내가 알아보는 단추 하나.

 

어린 시절, 위탁 가정, 그의 20대, 지난달, 지난주, 사흘 전. 오늘 밤 그가 오기로 되어 있던 저녁 식사를 위해 내가 작성한 장보기 목록까지.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페이지 전체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이제 완성된 저널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매들린의 저널도 똑같이 시작되었을 것임을 알아챘습니다. 평범한 물건들, 그녀가 만졌던 것들, 그녀가 썼던 것들, 다른 누구도 보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물건들. 그리고 그녀가 평범한 삶을 사는 동안에는 수집될 수 없었던 것들.

나는 로드의 포트폴리오를 덮었습니다. 더 이상 빈 페이지들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정오가 다 되어 가고 있었고, 그건 애나가 쉼터 아침 근무를 마치고 곧 집에 돌아올 것임을 의미했습니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방에 앉아,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고민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해야 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화기는 내 손에서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12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바라보며, 거의 오후 1시가 될 때까지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혼란과 공포가 같은 비율로 웅웅거렸습니다. 마침내 현관문이 열리고, 애나가 장바구니를 손에 든 채 들어왔습니다.

 

“늦었네.” 내 눈은 그녀의 눈을 맞추지 못한 채 커피 잔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아 그래, 오늘 밤 저녁 식사 때문에 식료품점에 들러야 했거든.”

 

나는 그녀가 갈색 종이봉투 하나에서 닭북채, 밀가루, 계란, 버터밀크를 꺼내고, 다른 봉투에서 신선한 주키니 호박과 노란 호박을 꺼내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닭고기를 염지액에 넣고 비닐랩으로 조심스럽게 덮은 뒤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마른 행주로 주방용 칼을 닦아내고는,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채소를 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말없이 로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의 재료를 맞추고 있는 아내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물어봐야 할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나는 아주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윌리엄이 죽었을 때, 그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당신한테 줬어?”

 

그녀는 채소를 썰다 말고 칼을 멈춘 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뭐라고? 아니. 유골 재를 줬지. 당신도 알잖아.”

 

“맞다.”

 

‘숨 쉬어, 숨 쉬라고 이 바보야.’ 나는 속으로 혼자 생각했습니다

 

“매들린은 어때?”

 

이제 그녀는 칼을 아예 내려놓았고,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내 팔의 힘이 풀렸습니다.

 

“매들린이 왜?” 그녀가 물었습니다.

 

“그 여자 죽었어?”

 

침묵. “응.”

 

“당신이 죽였어?”

 

또 다른, 더 긴 침묵. “응.”

 

그 직설적인 고백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제 새로 파헤칠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이해하는 것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왜?”

 

애나는 자르다 만 주키니 호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매들린은 언젠가 사라질 사람이었어. 모두가 이미 그녀가 사라지길 바라고 있었고, 기대하고 있었지. 그래서 지금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 거야.”

 

“그렇다고 당신한테 사람을 난도질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잖아! 그녀의 조각들을 그 변태 같은 책에 넣을 권리는 없다고!”

 

“난 도살자가 아니야, 오기. 난 이 사람들을 버리기를 거부하는 유일한 사람일 뿐이야. 다른 누구도 그들에게 남아있는 걸 보지 않아. 누구도 그것으로 아름다운 걸 만들 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언제부터 시작된 거야?”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진짜 눈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종류의 눈물은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고 싶은 본능과 싸워야 했습니다.

 

“윌리엄이 죽었을 땐, 그가 남긴 것들로 무언가를 하기엔 너무 늦었어. 내가 아는 한 최선을 다했지만, 난 여전히 아마추어였고, 죽은 사람의 주머니에 남겨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지.”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그게 나를 깨웠어. 내 친구들이 더 이상 잊혀진 채 죽게 두지 않을 거야. 나는 내가 항상 해오던 일을 하고 있어. 그들을 돕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은 너무나 매혹적이었고, 생생했습니다. 나는 가슴이 먼저 이해로, 그리고 즉시 후회로 아려오는 통증을 느꼈습니다.

 

로드의 쓰레기 같은 삶의 쓰레기들로 채워진, 그의 이름이 적힌 절반쯤 완성된 저널이 떠오르며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나의 슬픔은 더 어두운 무언가로 변해갔습니다.

 

 

“있잖아 애나, 그 목록을 어디다 뒀는지 생각하면, 정확한 장보기 재료들을 다 기억해 낸 게 참 대단하다 싶네.”

 

깨달음이 그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기까지 1초가 걸렸습니다. ” 그렇구나. 그래서 당신이 화가 난 거였어.”

 

그녀는 아일랜드 식탁에서 내가 앉아 있는 바 쪽으로 걸어와 내 옆에 있는 다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습니다.

 

“그건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여보.” 애나가 내 손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나는 손을 치웠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과잉 반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 반응이 즉시 미성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내가 흠칫하는 모습에 입술을 삐죽이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완성품을 보기도 전에 그걸 봐서 기분이 나빴을 거란 건 이해해.”

 

“아니, 난 당신의 완성품을 봤어. 피부, 이빨, 머리카락, 뼈 조각들을 봤다고. 그리고 당신은 로드한테 손대지 못해.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녀가 나에게 보낸 인내심 어린 답답하다는 듯한 눈빛은, 부모의 손을 잡기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보낼 법한 눈빛이었습니다.

 

“어거스트, 내 말 들어봐. 당신이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나도 그를 사랑해. 하지만 로더릭은 평생 동안 고통받아 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고통받을 거야. 그가 걷고 있는 길… 나는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 매일 보고 있어. 가장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불결함과 죄, 범죄 속에서 사는 걸 본다고.”

 

나는 상충되는 생각들의 멍한 상태에 앉아, 다른 생각이 짓밟기 전에 그 어떤 생각도 명확히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하나가 튀어나왔습니다. “왜 나는 책이 없어? 나도 버려졌었잖아.”

 

이번에는 내가 손을 빼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녀는 앞으로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오기, 여보, 아니야. 당신은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들이 실수를 한 거지. 당신을 봐! 당신은 집이 있어. 친구가 있어. 직업이 있어. 당신엔 내가 있잖아. 당신이 오늘 밤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알아차릴 거야.”

 

“로드한테는 내가 있어.” 내가 말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물었습니다. “정말 그럴까?”

 

나는 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위탁 가정과 소년원이 가르쳐주는 한 가지는 목숨이 걸린 것처럼 그 감정들을 억누르는 것입니다. 보통은 정말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울었습니다.

 

한때 장난기 많았던 소년이었던 로드를 위해 울었고, 빗나간 어른이 되어버린 그를 위해 울었으며, 로드가 결코 될 수 없는, 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위해 울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 보탬이 된 나 자신을 위해 울었습니다.

 

애나는 내가 무력하게 흐느껴 우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어거스트. 이것이 그의 삶을 고통스러운 것에서 웅장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모르겠어? 우리가 그에게 그걸 줄 수 있어.”

 

갑자기 그녀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그녀는 현관문 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따뜻하고 다정하며, 가장 난해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퍼졌습니다.

 

“오늘 밤엔 다른 계획이 있었어. 그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작은 기억들을 더 모으고 싶었거든. 하지만…” 그녀는 주방에 준비하다 만 음식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충분히 있는 것 같아.”

 

지금 나는 위층에 올라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애나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약 20분 뒤에 로드가 도착했습니다. 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애나가 그를 들여보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내가 어디 있는지 물었고, 그녀는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떠나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아니,” 그녀가 말했습니다. “어거스트는 당신이 여기 있길 바라.”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뻔했습니다.

 

내가 위층으로 올라오기 전, 애나는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 밤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길 바래?”

 

나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어거스트?”

 

나는 포트폴리오를 생각했습니다. 두 어린 소년의 그림, 커피 컵, 40달러, 그 모든 빈 페이지들.

 

그리고는 내가 받지 않았던 모든 전화들을 생각했습니다. 로드가 했던 모든 약속들, 그가 어겼던 모든 약속들. 다음 전화가 병원이나 감옥에서 걸려오는 것은 아닐지, 혹은 더 이상 전화를 걸어올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전화는 아닐지 걱정했던 모든 순간들을.

 

무엇보다도,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도 모르겠어.” 나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이마에 키스해 주었습니다. “그럼 가서 생각해.”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 글은 원래 그런 용도여야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당신들이 결정하는 걸 도와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는 글 말입니다.

 

경찰에 신고한다. 로드를 꺼낸다. 내 동생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었든 간에, 항상 ‘한 번 더’의 기회는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여기 위층에 있었습니다. 그 시간 대부분 동안 아래층에서 그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로드가 웃는 소리,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TV 소리. 그리고 조용해졌습니다.

 

이제 11분째 조용합니다. 경찰은 세 자리 숫자를 누르면 됩니다. 내 동생은 계단 한 층 아래에 있습니다. 대신, 나는 그 11분 동안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나는 결정을 내리거나 당신들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여기 올라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내가 로드가 이 집을 떠나길 바랐다면, 결코 그를 그녀와 단둘이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요.

 

애나는 내가 동생을 곁에 두도록 돕기 위해 수년을 애썼습니다. 그의 전화를 받고, 그에게 돈을 주고, 그를 집으로 초대하고, 그를 용서하고, 다시 시도하도록.

 

그리고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어쩌면 이것이 그를 도울 수 있는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방금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남는 방의 문이 열렸습니다. 애나가 그 방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녀가 뭘 들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로드의 책에는 빈 페이지가 아주 많았습니다. 나는 가야겠습니다.

 

내 아내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도록 도와줄 시간입니다.

🔗 원문 출처
https://redd.it/1woj6iy

본 콘텐츠는 Reddit에 작성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번역물로, 원작자의 동의를 받아 번역 및 편집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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