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 / 미스터리
혹시 이런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있나요?
아무튼 이야기는 지난주에 시작됐습니다.
저는 제스, 릴리, 데인, 미겔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거의 확실히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릴리입니다.
그런데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은 모두 릴리가 죽은 척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원래 릴리가 가끔 쓰던 수법이거든요.
릴리는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기거나 그냥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면, 잠든 척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릴리의 주머니쥐 놀이(playing possum) 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릴리는 거의 일주일째 ‘주머니쥐 놀이(playing possum)’를 하고 있습니다.
눈은 뜨여 있고, 얼굴은 잿빛을 띤 하얀색이더니 점점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몸은 부풀어 오르고 있고, 저는 파리 한 마리가 릴리의 안구에 내려앉는 것을 봤습니다.
알을 낳은 것 같기도 합니다.
릴리는 지난 월요일부터 입었던 판다 잠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않았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시체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썩은 고기 같은 냄새.
그리고 그 판다 잠옷……
그 판다 탈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더럽습니다.
저는 릴리가 지난 월요일에 그 안에서 죽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냥 어떤 종류의 현실 부정에 빠져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기는 하는 걸까요?
세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릴리가 살아 있고 제가 망상에 빠져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기괴한 사회 실험인 걸까요?
화분 뒤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 진행자가 갑자기 튀어나오고, 숨어 있던 관객들이 웃거나 박수를 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기분입니다.
제가 현실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지금 저는 소파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TV방 건너편에 있는 릴리를 바라보면서요.
릴리는 자신이 죽은 바로 그 의자에 그대로 기대어 있습니다.
눈은 크게 뜨여 있고, 살은 부풀어 올랐으며, 입술은 보랏빛이고, 피부는……
이제 곧 그 의자 안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단 지난 일요일 이야기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일요일은 우리가 한 노파의 고양이를 치었던 날입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 술을 조금 많이 마신 상태였고, 운전은 제가 했습니다.
데인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제스와 미겔, 릴리는 뒷좌석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정말 갑자기 도로로 뛰쳐나왔습니다.
새까만 고양이였고,
그다음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노파가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자기 고양이가 차에 치인 걸 보고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습니다.
릴리는 그 여자에게 고양이를 집 안에 두지 않고 왜 밖으로 돌아다니게 놔뒀느냐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길게 말하자면……
저는 그 노파가 마녀였고, 우리가 고양이를 죽인 것에 대해 우리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릴리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확실히 압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이상한 언어로 무언가를 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여자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게 일요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이 되어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거실에 나와 있던 사람은 릴리뿐이었습니다.
릴리는 판다 잠옷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릴리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했지만, 릴리는 천 리를 바라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혼자 있게 해달라는 뜻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는요.
릴리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똑같은 자세였습니다.
여전히 판다 잠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나는 릴리에게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미겔이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릴리 대신 미겔이 대답했습니다.
릴리가 아파서 수업에도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나는 릴리에게 말했습니다.
릴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릴리?”
대답이 없었습니다.
“릴리, 나아지길 바란다고……”
“그냥 내버려 둬.”
게임을 방해받은 게 짜증 나는지 미겔이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넘어갔습니다.
왜냐하면……
미겔이 너무나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녁을 먹을 때도 릴리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제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질 거야. 그냥 감기야.”
이런 행동은 며칠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릴리가 괜찮은지 하우스메이트 누구에게라도 물어볼 때마다, 그들은 마치 제가 미친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나는 릴리가 판다 잠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나보고 나쁜 놈이라며 그만 좀 하라고 했습니다.
“아프잖아! 그냥 내버려 둬.”
어느 순간 나는 소파에 앉아 릴리를 바라보면서, 릴리가 눈을 깜빡이는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스가 소리를 지르며 당장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상한 사람처럼 굴어서 릴리가 불편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릴리 앞에 커다란 쿠션까지 세워서 릴리가 저를 볼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릴리는 그 쿠션을 볼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때쯤이면 이미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상태였으니까요.
저는 부패가 시작되면 그들도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은……
릴리의 시신을 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상하게 들린다는 건 압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역겨운 사회 실험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식탁에 있는 릴리를 발견했습니다.
릴리는 의자에 앉은 채 뒤로 축 늘어져 있었고, 생기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모두가 릴리가 살아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을 걸었습니다.
이쯤 되자 릴리에게서는 악취가 났습니다.
정말 심했습니다.
심지어 미겔과 데인도 몰래 릴리에게서 거리를 두고, 코가 아니라 입으로 숨을 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나중에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자 미겔은 코를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그래, 나도 알아. 냄새나는 거. 하지만…… 릴리는 지금 엄청나게 우울한 상태야.”
“제스 말로는 릴리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건 처음 본대.”
“고양이 때문에 엄청 힘들어하고 있어.”
“그냥…… 내버려 둬. 우리가 릴리가 이겨낼 수 있게 기다려줘야 해.”
“그때까지는 샤워를 한다거나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일조차 릴리한테는 너무 힘든 거야.”
나는 거의 이렇게 말할 뻔했습니다.
‘죽은 사람이라면 그런 일은 당연히 힘들겠지.’
하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겨우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내 생각에는 릴리가 그 판다 잠옷 안에서 썩고 있는 것 같은데.”
미겔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지 마. 나쁜 놈처럼 굴지 말고.”
결국 저는 처음부터 했어야 했던 일을 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릴리의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우스메이트들은 경찰을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경찰에게 끝까지 확인해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TV 옆 의자에 앉아 있는 판다 잠옷 차림의 시체를 가리켰습니다.
그 의자는 이제 정말 끔찍한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릴리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나는 정말로 믿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우리가 거실에서 죽은 여자아이를 썩게 놔두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모두 체포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체가 의자와 한 몸처럼 굳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경찰도……
릴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내 하우스메이트들이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릴리는 경찰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스가 나를 따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한 행동은 도를 넘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한 일은 릴리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PS)
위의 글을 쓴 뒤로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릴리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우스메이트들과 정면으로 부딪쳤습니다.
우리는 크게 싸웠습니다.
나는 마녀의 저주가 릴리에게 무언가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저주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고, 우리는 모두 죽은 여자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냄새와 릴리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 그리고 말 그대로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그들도 동요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제가 뭔가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집 전체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냄새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미겔과 데인이 그 냄새에 대해 속삭이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스가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자 둘 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어젯밤,
저는 판다 잠옷을 입은 시체를 통째로 싸서 차에 싣고 숲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높은 절벽이 있습니다.
나는 시체를 바위 아래로 던졌습니다.
그곳의 동물들이 시체를 산산조각 낼 겁니다.
이미 너무 썩어서 먹을 수 없다면 모르겠지만요.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 안도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의자를 집 앞에 내다 버렸습니다.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제스가 공황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제스는 릴리가 어디 있느냐고 다그쳤습니다.
나는 릴리가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제스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겔은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스가 차를 타고 릴리를 찾으러 나간 뒤, 미겔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집 안에서 냄새가 정말 심하게 났고, 누군가는 뭔가를 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릴리가 필요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릴리에게 적절한 곳이 아니었고, 아마 입원 치료가 필요했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병원에 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릴리의 시체가 사라진 것은 좋은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주가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게 옮겨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데인이……
데인은 원래 늦게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제스가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내가 미겔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후가 됐고, 방금 나와 보니 데인이 미겔 옆 소파에 앉아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실제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눈은 정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손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화면에는 1인칭 슈팅 게임이 나오고 있고, 미겔은 계속 데인에게 좀 더 제대로 게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인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나는 데인도 릴리가 지난 월요일에 그랬던 것처럼 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주가 데인에게도 닿았고,
이제 데인은 죽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데인의 몸이 썩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더 빨리 절벽으로 데려가야 할까요?
이대로 똑같이 흘러간다면 미겔은 데인이 아무 문제 없이 멀쩡하다고 계속 생각할 겁니다.
제스가 집에 돌아오면 제스 역시 데인이 살아 있다고 믿을 겁니다.
심지어 경찰조차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면……
왜 저주가 나에게는 닿지 않은 걸까요?
왜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걸까요?
왜 나만 그들이
죽었다는 걸 볼 수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