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화괴담/괴물
원제:My neighbour used to peek at me over her fence when I was little. Her fence is 10ft tall.
이번에 일을 맡긴 고객이 어린 시절 내 이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그녀의 집 진입로에 차를 세웠을 때였다.
처음 그 거리 이름을 읽었을 때부터 어딘가 희미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몇몇 익숙한 지형지물을 보면서도 뭔가 떠오르는 듯했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디서 본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익숙함이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다 실제로 내 어린 시절 집이 이번 고객의 집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보고서야 모든 것이 맞춰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나도 이상했다. 구글 지도에 주소를 입력했을 때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내가 여섯 살이었을 때 삼촌이 나를 이 조용한 동네에서 데리고 나왔다. 나는 이 거리에서 살았던 일도, 그 집에서 살았던 일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여자친구 엘리는 그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고 했다. 아마 내 뇌가 일부러 기억을 차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차를 세운 뒤에도 한참 동안 운전대를 움켜쥔 채 어린 시절의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 뒤편으로는 넓은 숲이 이어져 있었고, 키 큰 나무들이 지붕보다 훨씬 높이 솟아 있었다. 단층집 자체는 버려진 것처럼 보였다. 창문은 깨져 있었고, 누렇게 죽은 잔디 위에는 빈 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게 분명했다.
가슴 위로 묵직한 압박감이 내려앉았다. 잠시 이곳을 그냥 떠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잔디 깎기 일을 시작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돈이 필요했다. 이 여자는 지금까지 내가 맡은 세 번째 고객이었다.
다른 고객들처럼 전화를 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이메일을 보내왔다.
“매주 일요일에 잔디를 깎아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일요일도 괜찮다고 답하고 주소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주소를 보내온 뒤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
“일요일에는 문을 열어둘게요. 돈은 식탁 위에 놓아둘 테니 가져가세요. 음료와 식사도 편하게 드세요.”
한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에게, 그것도 주변의 다른 업체를 두고 굳이 내게 연락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후하게 팁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차 안에 앉은 채 예전의 이웃을 기억해보려고 했다. 아마 나이가 많은 여자였던 것 같다. 이메일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머릿속을 뒤져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내 이상한 어린 시절 기억상실 속으로 사라진 또 하나의 기억일 뿐이었다.
그녀의 잔디밭은 엉망으로 자라 있었다. 무릎 높이까지 올라온 풀이 빽빽하고 들쭉날쭉하게 뒤덮여 있었다. 집 자체는 아주 멀쩡했다. 현관이 딸린 깔끔한 2층짜리 집이었다. 집은 잘 관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잔디밭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일부러 그렇게 방치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문을 두드려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일을 시작해야 할지 망설였다.
결국 일을 시작했다. 나도 그녀를 아직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일부러 만남을 미루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설명할 수 없었다.
잔디를 깎는 동안에도 내 시선은 계속 그녀의 집과 내 옛집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울타리로 향했다.
엄청나게 큰 울타리였다. 높이가 3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이런 것이 조용한 교외 주택가에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한 건 단순히 그 높이만이 아니었다.
울타리를 바라볼 때마다 눈 뒤쪽으로 압박감이 차올랐다. 마치 기억 하나가 억지로 떠오르려 하는데, 내 안의 무언가가 그만큼 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기억을 끌어내려 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다 아주 잠깐,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울타리 너머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엉켜 있고 가늘었다. 나무 울타리에 걸쳐져 나무에 달라붙은 채, 너덜너덜한 커튼처럼 매달려 있었다.
나는 값싼 플라스틱 세발자전거 위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뒷바퀴 하나가 없어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몸의 균형을 아주 조심스럽게 잡아야 했다. 다른 모든 기억은 사라졌는데 이런 쓸데없는 세부적인 것들이 뒤늦게 되살아나는 게 이상했다.
머리카락이 움직였다.
그리고 천천히, 울타리 위쪽으로 창백한 이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있었다.
희고 흐릿한 눈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눈이 누구를 훔쳐보고 있는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나였다.
오직 나만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내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목소리였는지,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눈이 사라졌다.
이마가 아래로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머리카락이 한 올씩 위로 끌려 올라갔다. 울타리 너머로 미끄러지듯 사라지더니,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온몸으로 한기가 퍼졌다.
나는 잔디 깎는 기계의 손잡이를 더 세게 움켜쥐고 앞쪽의 잔디 줄에만 집중했다. 다시는 울타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분명 내 상상이었을 것이다.
심심해서 내가 만들어낸 기억일지도 몰랐다.
3미터나 되는 울타리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죽마를 타고 있거나, 말도 안 되는 높이의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왜 누군가가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자기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겠는가?
너무 이상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가슴 아래쪽에서 불안감이 피어올라 가라앉지 않았다.
울타리 너머로 흘러내리던 머리카락과 나를 바라보던 눈.
그 장면은 갑자기 그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 가운데 가장 선명한 것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10년도 넘게 떠올릴 수 있었던 그 어떤 기억보다도 선명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장면을 떨쳐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 시간 뒤, 잔디밭은 다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장비를 삼촌의 밴에 다시 실었다.
그러고 나서 돈이 떠올랐다.
나는 현관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렸다. 그녀가 집에 그냥 들어와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낯선 사람의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는 건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몇 분을 더 기다린 뒤에야 나는 문손잡이에 손을 뻗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라모나 씨? 집에 계세요?”
나는 이메일 주소에서 본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 중 하나는 천장이었다.
천장이 유난히 높았다.
공간이 넓고 탁 트인 것처럼 느껴졌고, 거의 동굴처럼 텅 빈 느낌까지 들었다. 게다가 집 안은 몹시 추웠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1층 대부분은 벽으로 나뉘지 않은 개방형 구조라서 주방이 바로 보였다. 조리대 옆에는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레모네이드처럼 보이는 것이 가득 담긴 유리병이 있었고, 안에는 얼음이 둥둥 떠 있었다. 깨끗한 유리잔도 하나 있었다. 접시 위에는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망설였다.
조심하는 내가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녀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돈을 집어 들고 액수를 세다가 거의 숨이 막힐 뻔했다.
50달러짜리 지폐가 네 장이었다.
200달러였다.
내가 받기로 한 금액은 고작 60달러였다. 팁을 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이건 지나치게 많은 돈이었다.
혹시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혹시 돈을 잘못 센 것이라면?
나는 100달러만 가져가고, 혹시 모르니 나머지 100달러는 테이블 위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때 위층에서 무언가 들렸다.
거칠게 숨을 내쉬는 소리였다.
축축하고 불규칙한 숨소리.
마치 망가진 폐를 통해 억지로 공기를 끌어들이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직후 집 안에서 날카로운 삐걱거림이 두 번 연달아 울렸다.
갑자기 무거운 무언가가 올라선 듯, 바닥의 나무판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온몸이 굳었다.
누군가 분명히 집 안에 있었다.
나는 계단을 바라봤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지나치게 크게 울렸다.
“라모나 씨?”
대답은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계단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 들었던 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됐다.
무슨 소리였을까?
넘어진 걸까?
다친 건 아닐까?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확인해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게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무언가는 당장 나가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느낌은 갑작스럽고 확실했다.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
미끼를 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테이블 쪽으로 돌아섰다.
무례해 보이지 않으려고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손은 서툴고 떨렸다.
그리고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시동을 끈 밴 안에 앉아 있었다.
샌드위치는 조수석에 놓여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빵을 열어봤다.
안에는 버터와 생고기가 들어 있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러다 그 안에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어 잡아당겼다.
머리카락 한 올이 빠져나왔다.
검은색이었다.
터무니없이 길었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지만, 내 이상한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빼놓았다.
엘리가 웃었다.
“작은 할머니 한 분이 무섭다고?”
“그 사람이 할머니인지도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난 그 여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 내가 아는 한 남자일 수도 있지.”
“정말 확실해? 네가 예전 이웃이라고 했잖아.”
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집요했다. 내 어린 시절에 관한 무언가를 캐내려고 할 때마다 엘리가 보여주던 그 다정한 표정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그 긴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카락 한 올이 울타리에 걸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다가 결국 떨어져 나와 여섯 살의 내 쪽으로 천천히 날아 내려왔다.
나는 공중에서 그 머리카락을 낚아챘다.
그리고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지고 놀았다.
팔에 감아봤는데, 이집트 미라를 감싼 아마포처럼 긴 머리카락의 거의 전부를 내 작은 팔뚝에 감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는 엘리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대신 먹을 수 없었던 샌드위치 이야기를 했다.
엘리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불쌍한 할머니. 아마 치매일 거야.”
일주일 후, 나는 다시 그곳으로 갔다.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는 내가 괜한 일로 겁먹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고, 돈도 필요했다.
언젠가 삼촌 집에서 나와 살고 싶다면 돈이 필요했다.
그곳으로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잔디 깎는 기계를 켜기도 전에 내 눈은 다시 울타리로 향했다.
나는 울타리 위로 길고 구부러진 손가락들이 뻗어 나오는 모습을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얼굴의 절반이 울타리 너머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무 울타리 위로 이마와 눈만 드러낸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마지못해 돈을 받으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테이블 위에 300달러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가늘고 거미 다리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쪽지가 있었다.
⌈돈 전부 가져가. 왜 음료는 안 마셨지?⌋
내 시선이 레모네이드가 담긴 병으로 향했다.
나는 잔 하나를 가득 채웠다.
절반 정도를 싱크대에 버려 마신 척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는 잔을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셨다.
차가웠다.
달콤했다.
맛있었다.
그 순간부터 기억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거대한 울타리 너머로 음식이 던져지는 꿈이었다.
어떤 때는 비닐봉지 안에 아직 따뜻한 통닭구이가 들어 있었다. 봉지 안에서 육즙이 출렁거렸다.
어떤 때는 통째로 된 닭이었다. 날것이었고, 창백한 피부에는 아직 깃털이 붙어 있었다.
어떤 때는 금이 간 플라스틱 용기 안에 신선한 과일이 들어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썩은 사과와 두툼하고 무거운 붉은 고기 덩어리가 있었다.
나는 배고픔을 기억했다.
나는 울타리 옆 덤불 위에 담요를 깔아놓았던 것도 기억했다.
몸을 웅크리고 숨어서 받은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은신처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들키기 전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뭐든 닥치는 대로 먹었다.
짐승처럼 먹었다.
나는 두피가 끊임없이 가려웠던 것도 기억했다.
머릿니였다.
머릿니는 계속 번식하고, 물고, 기어 다녔다.
그걸 막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머리카락 속에는 기생충들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하나의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기억했다.
그 손은 내가 울타리에 등을 기대고 덤불 사이에 앉아 있던 곳, 울타리와 덤불 사이의 좁은 틈으로 들어왔다.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바스락거렸다.
손은 엄청나게 컸지만 부드러웠다.
긴 손가락 하나가 내 얼굴에 엉켜 붙은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가려움이 사라졌다.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보이는 것은 가늘고 회색인 팔뿐이었다.
그 팔은 울타리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다가 사라졌다.
나는 작은 두 손으로 그 거대한 손가락을 감싸 쥐고 놓지 않았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손가락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가락이 살며시 꿈틀거렸다.
나는 손가락을 놓았다.
그러자 손이 사라졌다.
팔도 다시 울타리 너머로 물러갔다.
다시 위를 올려다봤을 때, 울타리 위로 검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누군가 내 은신처에서 담요를 거칠게 걷어냈다.
그들은 소리를 질렀다.
역겨워하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음식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음식 대부분은 이미 썩어 있었다.
파리도 있었다.
구더기도 있었다.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덤불 밖으로 끌어냈다.
거대한 울타리에서 멀어지도록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만!”
나는 비명을 질렀다.
세 번째로 라모나의 잔디를 깎으러 갔을 때,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선명해지고 있었다.
마치 흐릿한 이미지가 천천히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는 그녀, 라모나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 기억들이 완전히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조각들이 서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피할 수 없는 필연처럼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머리가 아픈 대신, 내 안에 어떤 결심이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였다.
나는 어쩌면 내 이웃이 나를 가끔 돌봐주던 다정한 할머니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에게 음식을 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를 돌봐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야기를 읽어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내 기억이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현실 같지는 않은 다른 무언가로 모습을 바꾼 채, 그 안에 진실의 흔적을 품고 돌아오는 것.
이번에 잔디 깎는 기계를 켜면서 나는 울타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울타리 옆 덤불 속에 숨어 있을 때 들었던 콧노래를 기억했다.
낮고 일정한 소리였다.
집 안에서 들려오던 고함소리도 그녀의 콧노래를 듣고 있으면 언제나 조금 잦아들었다.
나는 내가 아주 높이 들어 올려져 집 지붕 너머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숲속의 튼튼한 나뭇가지 위에 내려놓아졌던 것도 기억했다.
그리고 죽은 여우를 받았던 것도 기억했다.
나는 털이 붙은 살을 깨물었다.
따뜻한 피가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지상에서 아주 높은 곳, 따뜻한 무언가에 감싸인 채 앉아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던 것도 기억했다.
나는 겁에 질리고 굶주린 채 몸을 떨면서 울타리와 덤불 사이의 은신처로 달려갔던 것을 기억했다.
누군가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헨리, 당장 여기로 돌아와! 이 망할 자식아!”
그녀가 소리쳤다.
그녀는 내 팔을 붙잡아 거칠게 잡아당기며 몸을 돌렸다.
“엄마, 그만해!”
나는 흐느꼈다.
“또 때리지 마!”
나는 엄마가 멈춰 선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내 목덜미를 무언가가 스치는 느낌도 기억했다.
가볍고 익숙했다.
긴 머리카락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숨을 들이켰다.
엄마의 얼굴에는 공포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우리 위쪽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손가락들이 나타났다.
그 손가락들은 엄마의 몸을 감싸더니 그녀를 들어 올렸다.
점점 더 높이.
계속해서 높이.
엄마는 끌려 올라가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괜찮아, 엄마! 별 보러 데려가는 거야.”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엄마의 비명이 멈췄다.
나는 무언가가 유성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봤다.
나를 감싸는 손이 나타났다.
나를 들어 올린 그 손은 아주 따뜻했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몸을 떨며 그 따뜻함에 매달렸고, 그 손은 나를 온전히 감싸 안았다.
나는 예전처럼 집 지붕 너머가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이제 그 모습은 흐릿하지 않았다.
선명했다.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분명했다.
그녀의 피부는 창백했고, 몸은 깡말라 있었다.
입술은 두개골 위로 지나치게 넓게 찢어진 것처럼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눈은 어두웠다.
하지만 따뜻했다.
“엄마도 별 보는 게 좋았어?”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잔디 깎는 기계의 시동을 끄지 않았다.
나는 감각이 사라진 다리로 그녀의 집을 향해 걸었다.
잔디 깎는 기계의 엔진 소리는 점점 멀어져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현관문은 언제나 그랬듯 열려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위쪽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그 소리는 길어지고 깊어졌다.
2층은 완전히 탁 트인 구조였다.
넓고 경사진 다락방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다시피 하며 아주 키가 큰 여자가 누워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회색에 가까웠다.
얼굴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세월에 깎인 듯한 흔적이 있었다.
팔다리는 길고 가늘었다.
그녀는 바닥 거의 전체를 덮고 있는 부드러운 매트 위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몸을 조심스럽게, 일부러 접은 듯한 자세였다.
마치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참으려 했지만 결국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었다.
공포와 슬픔, 그리고 오랫동안 내 안에 묻어두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잔인할 정도로 거세게 나를 짓눌렀다.
손가락들이 내게 뻗어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손가락이었다.
그 손가락들이 나를 감싸고 그녀 쪽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나는 깊고 안정적인 따뜻함 속으로 끌려갔다.
몸을 떨던 것도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당신이 죽였어.”
나는 흐느꼈다.
“당신이 엄마를 죽였어! 그렇지?”
그녀는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왜? 왜 그랬어?”
나는 말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마다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녀는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었다.
내 울음은 점점 작아져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었다.
“왜 엄마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어?”
나는 속삭였다.
“왜 내가 굶어도 내버려 뒀어? 왜 나를 때렸어? 난 그냥 어린아이였는데.”
그녀의 따뜻함은 그대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느리고 일정했다.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맞은편 안락의자에는 작은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일부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은 계속 나를 향하고 있었다.
흔들림 없이.
인내심을 가진 채.
우리는 여전히 2층에 있었다.
거대한 매트는 그대로 바닥 전체에 펼쳐져 있었다.
침대는 방 한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해 가져다 놓은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누구예요?”
내가 물었다.
“아까 그건 뭐였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시선이 내 옆에 있는 무언가로 향했다.
나도 그쪽을 따라 바라봤다.
매트리스 위에 접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집어 들었다.
나는 큰 몸과 굶주림이라는 저주를 받았어.
하지만 나는 지켜.
사랑스러운 작은 소년을.
춥고 배고픈 아이를.
나는 너를 별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그녀가 닿지 못하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갔을 때 나 자신을 잃었어.
하지만 이제 그녀는 너를 해치지 못해.
용서해줘. 부탁이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침내 삼촌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만큼은 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에 얽힌 세부적인 것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는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삼촌은 먼저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길고 헝클어져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더러웠고 솔기가 터져 있었다.
내 몸은 온통 멍과 상처,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결국 알아야 할 것은 많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사실만 빼면.
내 엄마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가 숲속에서 반쯤 먹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건은 곧 동물의 공격으로 결론이 났다.
사람들은 엄마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뒤 그것을 업보라고 불렀다.
나는 계속 라모나를 찾아갔다.
그녀가 작은 할머니의 모습일 때는 머리를 빗겨주고 돌봐주었다.
그녀가 다른 모습일 때는 옆에 누워 그녀의 콧노래를 들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글로 남겼다.
내 엄마와 달리 라모나는 기억될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녀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해치거나 죽였을 테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야 했다.
라모나는 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가 통제력을 잃었던 순간에도 결국 모든 것은 나를 지키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가 죽어가던 날, 나는 그녀의 커다란 손을 잡은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사라져 있었다.
이제 그녀가 그곳에 살지 않고, 그 집에도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으로 돌아가 잔디를 깎는다.
그리고 가끔 잔디를 다 깎고 나면 밤이 하늘을 집어삼킬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별자리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으면, 내가 아주 천천히 집 지붕 위로 떠오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